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 대통령 (문단 편집) === 미 건국부터 [[제2차 세계 대전]] 이전 === 미 건국 초기에는 정당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. [[구국영웅|범국민적인 존경을 받았던]] [[조지 워싱턴]]도 정당을 갖지 않았고, 건국 지도자들 대부분이 "정당 제도가 국가를 분열시킨다"는 생각에는 대부분 뜻을 같이했기 때문이다. 하지만 조지 워싱턴이 퇴임하자마자, 연방의 권력을 늘려 강대한 국가를 이루고 싶어했던 [[알렉산더 해밀턴]]과 각 주들에게 최종권력을 주지 않으면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말소될 것을 우려한 [[토머스 제퍼슨]]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. 결국 제2대 대통령 [[존 애덤스]]는 해밀턴의 추종자들이 만든 [[연방당]], 그리고 3대 대통령 제퍼슨은 자신의 [[민주공화당(미국)|민주공화당]]에서 승리하여 당선되었다.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적 정당의 체제가 정립되기 이전이라, 두 당 모두 실질적인 권력은 별로 없었고, 유권자들도 대체적으로 당보다는 후보의 자질을 보는 편이었다. 제퍼슨 대통령 아래 나라가 좀 잘 돌아가자, 애초부터 굳건한 기반이 없었던 연방당은 선거에서 계속 패배하다가 결국 와해되고, 매디슨, 먼로 등 민주공화당 계열 인사들이 연속으로 집권하는 '화합의 시대(Era of Good Feelings)'가 도래한다. 마땅한 야당이 없던 민주-공화당 28년(1801~1829) 이후 존 퀸시 애덤스에 반대한 앤드루 잭슨 지지세력이 [[탈당]]하여 민주당을 세우면서 잔당세력은 휘그당이 되었다. 휘그당은 이따금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승리한 대통령이 죄다 병으로 급서하며 점차 몰락의 기미를 보인다. 결국 [[남북전쟁]]이 발발할 무렵, 휘그당이 몰락하고 새로 생긴 공화당의 [[에이브러햄 링컨]]이 당선되어 지금의 [[양당제]]가 시작된다. 참고로 이때 승리한 공화당은 아직도 미 역사상 유일하게 신생당이 대선에서 승리한 경우로 기록되고 있다. 이후 링컨으로 시작되는 공화당의 24년간의 장기집권(1861~1885)이 있었다.[* 사실 링컨의 후임자인 존슨은 민주당이다. 다만 내각은 공화당이 장악한 형태다.] 개혁적인 이미지로 민주당의 클리블랜드가 잠시 집권하여 이를 깨뜨렸으나(그나마도 이어진 임기가 아니었다) 이후 공화당이 다시 16년간(1897~1913) 장기 집권했다. 다만 링컨 이후 한동안 공화당과 민주당은 약간의 관세 정책 빼고는 정책차가 거의 없었으며, 공화당이 선거인단 덕에 당선된 케이스도 두번이나 된다.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는 [[사회주의]]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. 한 예로 수차례나 대통령에 출마한 사회주의자 [[유진 뎁스]]는 1912년 선거에서 6%나 득표한다.[* 이 시대의 정치사를 사회주의자의 시각으로 본 것이 소설 <[[강철군화]]>이다. 강철군화는 인민당이 주지사 권한을 넘겨받지 못할 것이고, 선거 역시 그럴 것이라는 대단히 냉소적인 시각을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. 물론 지금도 미국의 급진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이 시대는 "사회주의 [[혁명]]을 의회 쿠데타에 가까운 보수 양당의 선거제도 개악으로 저지시킨 시기"로 이해되고 있다. 실제로 선거인단 제도 등 미국 선거제도 자체가 소수당을 사표로 몰아 붙이는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.] 또한 부패한 관료들과 자비없는 [[대기업]]들에 반발한 중서부 농부와 서민층이 주축이 된 [[인민당]](people's party, 혹은 populist)을 결성했는데[* 포퓰리스트, [[포퓰리즘]]의 어원이 되는 정당이라고 하나, 포퓰리즘의 진짜 어원은 [[로마 제국|로마]]의 평민파에서 출발한다.], 1892년 선거에서 이 당의 후보로 나온 제임스 위버 후보는 8.5%, 약 백만 명의 지지를 받고 중서부 4개 주에서 승리하기도 했다. 이런 분위기 속에 정권 연장을 꾀한 민주당이 [[윌리엄 J. 브라이언]]이라는 걸출한 웅변가를 대선후보로 내세운 다음 인민당과 손을 잡아 1896년도 대권에 도전했으나, [[쇼미더머니]] 수준의 선거자금을 모은 공화당의 [[윌리엄 매킨리]] 후보에게 대패하고 만다. 중서부에서는 대승했으나 북부를 털려서 패배. 브라이언은 인민당과 연대를 해제한 1900년과 1908년에도 다시 도전하지만 역시 패배하게 된다. 이런 정치적 변혁은 현실 정치적인 변화도 이끌었다. [[자본주의]] 체제를 유지하면서 반트러스트와 [[개혁]]을 옹호하는 혁신주의(progressivism) 경향이 두드러진 것. 공화당 역시 혁신주의를 주창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나왔다. 이런 경향은 [[시어도어 루스벨트]](이하 테디), [[윌리엄 태프트]], [[정권교체|정권을 교체한]] 민주당의 [[우드로 윌슨]]으로 이어졌다. 심지어 테디는 1912년 공화당을 탈당해 혁신당(progress party, 혹은 진보당)을 차리기까지 했다.[* 흔히 "진보 정치사조"로 해석되는 "progress"는 여기서 유래되었다. 한국으로 따지면 [[국민참여당]] 정도가 "혁신진보" 사조에, [[민주노동당]], [[진보신당]], [[사회당(1998년)|사회당]] 등의 사조는 "사회/사민"사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. "진보"란 단어 자체는 [[조봉암]]의 진보당에서 시작되었지만, progress의 의미는 이렇게 조금 복잡하다. 링컨의 반트러스트적 면모를 두고 혁신주의 사조를 링컨대까지 끌어올리는 시각도 있다. 이후에도 혁신주의는 1924년, 1948년(이 경우는, 민주당의 전직 [[미국 부통령|부통령]] 월리스가 탈당한 경우) 대선 등에서 독자 출마로 상당한 득표력을 보인다.] 이러한 공화당의 분열로 윌슨의 민주당이 8년을 집권했으나 외교정책 문제와 [[1차대전]] 참전 문제로 신임을 잃고, [[대공황]]까지 다시 공화당이 12년(1921~1933) 집권한다. 다만 이시기의 공화당은 혁신주의 사조를 완전히 뺀 [[자유방임주의]] 보수정당이었다. 이후 [[프랭클린 D. 루스벨트]](이하 ''''FDR'''')이 나타나 4선까지 하고 해리 트루먼까지 이어가면서 민주당이 20년(1933~1953)을 집권한다. [[제2차 세계대전]] 이후에는 레이건과 부시의 12년이 있긴 했지만, 대략적으로 8년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번갈아서 집권하는 구도가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